한잔에 3만원 하는 10년만에 술을 마셨다.
어제는 회식을 했는데 대표님께서 소주 한잔 건네 주셔서 거절하지 못했다. 평소 같았으면 적당히 내려 놨을 텐데 끝까지 지켜보시는 걸 여러 직원들이 함께 보고 있어서 결국 한잔 마셔 드렸다. 사람들은 이 한잔이 최소 2~3만원의 기회 비용을 지불했다는 것을 모를 것. 이 한잔으로 오늘 시승, 대리, 추가수입 활동은 종료되었다. 왜 이렇게 술을 마시고 권하는 걸까? 몸에 안좋다면 줄여야 한다고들 말하면서 왜 남들에게 주지 못해 안달일까?

술 권하는 사람들, 그 마음속을 들여다보니: 다양한 심리의 스펙트럼
어제 회식 자리에서 느꼈던 그 답답함과 불편함, 그리고 보이지 않는 기회비용에 대한 생각들이 오늘까지 이어지네요. "몸에 좋지 않다면서 왜 남들에게는 권할까?" 이 질문을 곰곰이 되짚어보다 보니, 술을 권하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참 다양한 심리가 공존하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술을 권하는 모든 경우가 제가 이전에 떠올려본 것처럼 그렇게 복잡하거나 부정적인 심리에서만 비롯되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때로는 좀 더 단순하거나, 어쩌면 그들 나름대로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동기에서 비롯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예를 들어, '다 같이 한 잔 해야 분위기가 살지!' 라거나 '함께 마셔야 더 빨리 친해진다'는 생각처럼, 술이 어색함을 풀고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일종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믿는 분들이 계시죠. 이런 분들은 좋은 마음에서, 혹은 모두가 즐거운 분위기에 동참하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술을 권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혼자만 술을 마시거나, 누군가가 술자리에서 빠져 있으면 그게 오히려 미안하거나 어색해서 그럴 수도 있고요. "좋은 건 나눠야지!" 하는 마음이 술에도 적용되는 경우라고 할까요.
또 어떤 경우에는, 특히 손님을 대접하거나 누군가를 챙겨주고 싶을 때, 술을 권하는 것이 일종의 환대나 호의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문화도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술인데 맛이라도 한번 봐" 라거나 "힘든 일은 술 한 잔으로 털어버리자"는 식의 권유에는 그런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을 수도 있겠죠. 물론 그 마음 자체는 나쁘지 않을 수 있지만,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이것도 결국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일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나 직장 문화 속에서 '회식=음주', '술은 함께'라는 공식이 하나의 관습처럼 여겨져 왔던 것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의도 없이 그저 관습적으로, 혹은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술을 권하는 경우도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원래 다들 이렇게 해왔으니까'라는 생각으로, 깊은 고민 없이 그저 분위기를 따르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비교적 가벼운 의도나 사회적 관습을 넘어선, 때로는 우리가 불편하게 느끼는 술 강요의 이면에는 지난번에 제가 짚어봤던 것처럼 조금 더 복잡하고 어두운 심리들이 숨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선배님께서 말씀하신 "나도 마시는데 넌 왜 안 마셔. 이 나쁜 걸 왜 너만 피해"와 같은 그런 마음들이죠.

첫째로, '인지부조화'를 줄이려는 자기합리화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부조화는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과 실제 행동이 다를 때 느끼는 불편함이잖아요? 만약 술을 권하는 사람이 속으로는 '아, 술 많이 마시면 내일 힘든데...' 또는 '이거 건강에 안 좋은데...' 하면서도 마시고 있다면,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의 존재가 그 모순을 더 크게 느끼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럴 때 "에이, 다 같이 마시는 건데 뭐 어때", "너도 마셔, 괜찮아" 하면서 상대방도 자신과 같은 행동을 하게 만들면, '나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 하는 식으로 그 불편한 마음이 좀 줄어들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이 나쁜 걸 왜 너만 피해가?" 하는 마음도 이런 자기합리화 과정에서 나오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둘째로는, 조금 짓궂게 들릴 수도 있지만 '고통의 평준화' 또는 '책임감의 분산' 같은 심리도 있는 것 같아요. "나도 이렇게 힘든데, 너만 편할 수는 없지" 하는 마음까진 아니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즐기자(혹은 망가지자)', '내일의 숙취도 함께라면 덜 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죠. 혼자만 부정적인 결과를 감수하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하면 그 부담감이 좀 덜어지는 것처럼 느끼는 심리랄까요.

셋째로, 어쩌면 상대방의 자기 통제력에 대한 불편함이나 미묘한 시기심이 작용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술자리의 유혹이나 권유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사람을 보면, 그렇지 못한 자신이 상대적으로 나약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사람을 자신과 비슷한 상태로 만들고 싶어 하거나, 혹은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서 술을 더 권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고요.

마지막으로, 집단 내 동질성을 강화하고 이탈자를 방지하려는 무의식적인 압력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특히 위계질서가 있는 조직에서는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소속감의 표현이나 일종의 의례처럼 여겨질 때가 있잖아요. 술을 거부하는 모습이 혹시라도 조직의 화합을 깨는 것처럼 비칠까 봐, 혹은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다 같이 마시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제가 대표님의 술을 결국 받아 마신 것도, 어쩌면 이런 보이지 않는 집단적 분위기가 한몫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제가 지금 이야기한 것들이 술을 권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겁니다. 사람의 마음은 정말 복잡하고 다양하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 동기가 무엇이든, 그 결과가 상대방에게 불편함과 소중한 시간의 상실로 이어진다면 한 번쯤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겠죠.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각자의 선택이 온전히 존중받는 문화일 테니까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음주 문화와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다양한 심리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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