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저녁약속이 있었다. 백만년만의 약속이랄까. 출장을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선배의 '그런데 누구랑 만나는거냐?' 라는 쓸데없는 질문도 신경쓰였고, 살짝 불쾌했지만. 그럴 수 있다. 궁금해 할 수 있다. 궁금하지만 그 따위 식으로 물어볼 수 있다. 나도 다른 누군가에게 그럴 수 있다고. 마인트 컨트롤을 했다.
약속시간 17시 30분이 조금 지날때까지 사무실에 있다가 연락이 없길래 전화 했는데. 후배는 쓸데없는 거짓말을 했다. 약속장소에 나와 있다는. 할 필요도 없는 사소한 거짓말.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약속장소까지 우산도, 가방도 없이 걸어 갔는데. 없길래. 간만에 오십천이나 걸으려 했는데. 비가 쏟아진다. 굴다리로 피신. 그 사이 후배 도착. 그리고 몇 마디 공방 후 아무일 없다는 식으로 두시간을 보낸 후 숙소로 돌아왔다....
불필요한 거짓말에 속았고. 사소한거라 그냥 넘겼다. 대화의 가벼운 소재로만 삼고.
그런 관계. 사이가 있다. 그래도 되고. 그래도 안 미안하고. 안 열받고. 아무일도 아닌 그런 사이.
그런 사이. 과연 그런 사이가 내 생애 얼마나 될까.
그러고보니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에 부모님이 계시고 경상남도 창원에 살면서 삼척으로 휴가를 왔다가 강릉에서 김재민을 만난 김명섭이와의 통화도. 행위도. 생각해보면 다 거짓말이다. 오라는 것도 거짓말. 가겠다며 끊는 것도 거짓말.
그러나. 기다리지도 갈 생각도. 다음날 사과도. 화도 나지 않는 사이. 그런 사이들이다.
얼마나 될까. 이런 사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이런 사이.
돌이켜보면. 화를 냈던 사람이 있다. 나는 이런 사이 중 하나고. 이런 류의 약속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왜 약속을 안 지켜냐며 정색하며 화를 냈던 한사람이 생각난다. 이런 류의 약속들.... 그에게는 진심이었을까? 그랬겠지. 심지어 쌓이고 쌓여서 내게 화를 냈겠지? 정해준과이 인연, 추억을, 나는 막역함으로 하고 있었지만. 해준이는 조금 결이 다르게 받아들였고, 쌓아두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나와 해준이의 관계만 그럴까. 지금 곁에 있는 선배도 그럴 것이다. 누가 정상인지, 누구의 문제인지. 문제이긴 한건지, 그냥 나만의 문제인지도 모를 지경의 혼재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마음먹고 행동해야 할까?
아직 덜 컸다. 얼마나 더 나일 먹어야. 다 크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