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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분석] 신호위반 배달기사의 비극적 사고, '업무상 재해' 인정… 법원의 판단 기준과 시사점

오픈에어워커이기도 2025. 4. 5.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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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의 개요: 신호위반 사고와 엇갈린 인정 여부

배달 업무 중 신호를 위반하여 교차로를 건너다 차량과 충돌, 사망에 이른 25세 배달기사 A씨. 그의 부모는 아들의 사망이 업무와 관련된 재해라며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에 유족급여와 장례비 지급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공단은 A씨의 '신호위반'이라는 중대한 과실이 사고의 주된 원인이라며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불복한 유족은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법원은 A씨의 신호위반이 배달 업무 수행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범위 내에 있었고,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인정하며, 그의 사망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결은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배달 노동자의 산업재해 인정 범위, 특히 노동자의 과실이 재해 인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중요한 법적 해석을 담고 있습니다.

 

2. 산재 인정 절차: 신청부터 소송까지

업무상 사고나 질병 발생 시 산업재해로 인정받고 보상을 받기 위한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 ① 사고 발생 및 요양/사망: 근로자가 업무와 관련하여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하는 재해가 발생합니다.
  • ② 보험급여 청구 (근로자 또는 유족 → 공단): 근로자 본인 또는 사망 시 유족이 필요한 서류를 갖추어 관할 근로복지공단 지사에 요양급여, 휴업급여, 장해급여, 유족급여, 장례비 등 해당 보험급여를 청구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유족(A씨 부모)이 유족급여 및 장례비를 청구했습니다.
  • ③ 공단의 조사 및 결정 (승인/불승인 처분): 공단은 청구를 접수하면 업무 관련성, 사고 경위, 의학적 소견 등을 조사합니다. 필요한 경우 자문의사회의 자문을 거치거나 특별진찰을 실시할 수 있습니다. 조사가 완료되면 공단은 보험급여 지급 여부를 결정하여 청구인에게 통지합니다(승인 또는 불승인 처분). 이 사건에서 공단은 '불승인 처분'을 내렸습니다.
  • ④ 불복 절차 1단계: 심사청구 (청구인 → 공단): 공단의 불승인 처분에 이의가 있는 경우, 처분이 있음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공단에 '심사청구'를 제기하여 재심사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공단 내부의 1차 불복 절차입니다.
  • ⑤ 불복 절차 2단계: 재심사청구 (청구인 →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 심사청구 결정에도 불복하는 경우, 결정이 있음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고용노동부 소속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공단 외부의 전문 위원회에서 다시 판단하는 절차입니다. (심사청구를 거치지 않고 바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 ⑥ 불복 절차 3단계: 행정소송 제기 (원고 → 법원): 재심사청구 결정에도 불복하거나, 심사/재심사청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법적 판단을 구하고 싶을 경우, 처분(또는 재심사 결정)이 있음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관할 행정법원에 '행정소송'(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 유족은 이 단계에서 소송을 제기하여 법원의 판단을 구했습니다.
  • ⑦ 행정소송의 진행 및 상소: 행정법원의 1심 판결 이후, 판결에 불복하는 당사자(유족 또는 공단)는 고등법원에 항소, 대법원에 상고하여 최종적인 법적 판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행정소송에서의 법률 조력: 산재 전문 변호사의 필요성

산재 불승인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은 복잡한 의학적, 법률적 쟁점을 다루는 경우가 많아 법률 전문가의 도움이 중요합니다.

  • 변호사 선임 시점: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불승인 처분 통지를 받은 직후, 또는 심사/재심사 청구 단계부터 변호사와 상담하여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좋습니다. 행정소송 제기 시에는 변호사 선임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 변호사의 역할: 산재 전문 변호사는 유사 판례 및 법리 검토, 의학적 자문 확보, 증거 수집(목격자 진술, 근무 기록 등), 공단 처분의 위법성 주장, 법정 변론 등을 통해 청구인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대변합니다. 특히 업무 관련성(업무수행성, 업무기인성) 입증이나 법률상 제외 사유 해당 여부(예: 근로자 과실 정도)에 대한 치열한 법리 다툼에서 전문적인 조력이 필수적입니다.
  • 법률구조 지원: 경제적 어려움으로 변호사 선임이 힘든 경우, 대한법률구조공단 등을 통해 산재 관련 행정소송에 대한 법률 구조(상담, 서류작성 지원, 소송 대리)를 신청하여 지원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4. 법원의 판단 논리 심층 분석: '통상적 위험'과 '업무 관련성' 인정

서울행정법원은 공단의 불승인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하며 유족의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법원의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 ① 신호위반 사실 인정 및 그 원인에 대한 판단: 법원은 A씨가 좌회전 신호에 직진하여 신호를 위반했고, 이것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점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왜 신호위반을 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과 원인을 깊이 있게 살폈습니다.
  • ② '업무수행 과정상 통상 수반되는 위험' 범위 내 행위: 법원은 배달 업무의 본질적인 특성에 주목했습니다. 배달기사는 고객 불만 방지 및 수수료 획득 등을 위해 신속하게 배달해야 한다는 강한 압박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압박 속에서 때로는 교통 법규를 위반하게 될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A씨의 신호위반이 비록 위법 행위이지만, 배달 업무 수행 중 시간에 쫓기다 발생할 수 있는, 즉 '업무수행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행위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A씨의 행위가 업무와 완전히 무관한 개인적 일탈 행위는 아니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 ③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 등 기여 요인 인정: 법원은 사고 당일 A씨가 32건의 배달을 수행하는 등 과중한 업무를 수행했다는 점, 이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누적되어 순간적인 집중력이나 판단력이 저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았습니다. 사업주가 제출한 '픽업 시간 압박' 관련 확인서와 동료 기사들의 '급박한 업무 환경' 진정서 등도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했습니다. 즉, A씨의 과실 이전에 업무 자체가 사고 발생의 위험 요인을 제공하거나 A씨의 주의력을 저하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업무기인성'을 인정한 것입니다.
  • ④ 산재보험법상 '범죄행위' 제외 규정의 협소 해석: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은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합니다. 공단은 A씨의 신호위반을 이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 규정을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해석했습니다. 단순 교통법규 위반(신호위반)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범죄'일 수는 있지만, 산재보험의 보상에서 제외될 정도의 '고의성이 명백하거나 산재보험 제도의 목적에 반하는 심각한 위법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특히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 등 다른 요인이 개입된 상황에서의 과실 행위는 이 제외 규정의 '범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입니다.
  • ⑤ 부가적 환경 요인 고려: 법원은 사고 당시 A씨 진행 방향의 정차 차량들이 시야를 가려 반대편 좌회전 차량을 순간적으로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부가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이는 A씨의 과실이 전적인 원인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하며, 사고 발생에 다른 요인도 작용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입니다.

 

5. 핵심 법률 개념 해설

  • 업무상 재해 (Occupational Accident/Disease):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에 정의된 개념으로,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을 말합니다. '업무상의 사유'는 크게 '업무수행성'(근로계약에 따른 업무 수행 중 발생)과 '업무기인성'(업무와 재해 발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음)이 모두 인정되어야 합니다. 이번 판결은 근로자의 과실이 있더라도 업무기인성이 강하게 인정되면 업무상 재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유족급여 및 장례비: 근로자가 업무상 사유로 사망한 경우 그 유족의 생활 보장을 위해 지급되는 산재보험 급여입니다. 유족급여는 일시금 또는 연금 형태로 지급될 수 있으며, 장례비는 장례를 치른 유족에게 실비 성격으로 지급됩니다.
  • 근로복지공단 (KCOMWEL): 고용노동부 산하 준정부기관으로, 산재보험 및 고용보험 사업을 담당하며, 산재보험 급여의 지급 결정, 재활 서비스 제공 등의 업무를 수행합니다.
  •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산재보험법):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고, 재해 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한 법률입니다. 사용자의 과실 여부를 묻지 않는 무과실 책임주의를 기반으로 한 사회보험입니다.
  • 신호위반: 도로교통법에 규정된 신호기의 신호 또는 경찰공무원 등의 신호를 따르지 않고 차량을 운행하는 행위입니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12대 중과실 사고 유형 중 하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 중과실 (Gross Negligence): 통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기울여야 할 주의의무를 현저하게 위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 과실보다 비난 가능성이 높은 경우를 말합니다. 산재 인정 여부에서 근로자의 과실 정도는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될 수 있으나, 중과실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업무상 재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업무상 재해의 불인정 사유):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 범죄행위, 정당한 이유 없는 무단이탈 중 발생한 사고 등 특정 사유로 인한 재해는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는 예외 규정입니다. 이 중 '범죄행위'의 해석 범위가 쟁점이 되곤 합니다.
  • 행정소송: 행정청(근로복지공단 등)의 위법한 처분(불승인 결정 등)이나 부작위로 인해 권리나 이익을 침해받은 국민이 법원에 그 취소나 변경 등을 청구하는 소송입니다.

 

6. 사실관계의 명확한 이해: 배달 노동의 현실 반영

  • 사고 상황: A씨는 음식을 '픽업'하러 가던 중, 즉 배달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고를 당했습니다.
  • 위반 내용: 좌회전 신호 시 직진 주행. 명백한 신호위반입니다.
  • 업무 환경: 사고 당일 32건 배달 수행. 이는 상당한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유발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사업주와 동료들의 진술은 배달 업무의 '신속성 요구'와 '시간 압박'이 일상적임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업무 환경이 A씨의 판단력 저하나 위험 감수 행동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법원이 인정한 것입니다.

 

7. 재발 방지를 위한 예방 및 관리 방안

이 사건은 배달 노동자의 안전 문제와 직결된 중요한 예방 과제를 제시합니다.

  • 플랫폼/배달대행업체의 책임 강화:
    • 안전 중심의 배달 시스템 설계: 무리한 배달 시간 압박을 유발하는 알고리즘 개선, 피크 타임 분산 유도, 악천후 시 배달 제한 또는 인센티브 조정 등이 필요합니다.
    • 합리적인 업무량 관리: 연속 배달 건수 제한, 의무 휴식 시간 보장 등 과로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적 장치가 요구됩니다.
    • 실효성 있는 안전 교육: 단순 법규 전달을 넘어, 위험 상황 예측 및 대처, 피로 관리, 방어 운전 요령 등 실제적인 안전 운전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이수 여부를 관리해야 합니다.
    • 안전 장비 지급 및 착용 관리: 헬멧, 보호대 등 기본적인 안전 장비 지급을 지원하고 착용을 독려,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공정한 보상 체계: 단순히 배달 건수에만 연동된 수수료 체계는 과속 및 위험 운전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안전 운행 인센티브 도입 등 대안적 보상 체계를 고민해야 합니다.
  • 배달기사 개인의 안전 의식 제고:
    • 교통 법규 준수: 아무리 급하더라도 신호위반, 과속 등 위험 행위는 피해야 한다는 인식이 중요합니다.
    • 피로 관리: 본인의 컨디션을 수시로 점검하고, 피로 누적 시 무리하게 운행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등 자기 관리가 필요합니다.
    • 방어 운전 습관화: 교차로 통과 시 서행, 주변 차량 및 보행자 움직임 예의주시 등 방어 운전 습관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 정부 및 사회적 노력:
    • 플랫폼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제도적 지원: 플랫폼 기업의 책임 강화, 표준 계약서 도입, 적정 수수료 및 근무 조건 가이드라인 마련 등 제도적 개선 노력이 필요합니다.
    • 안전한 이륜차 운행 환경 조성: 이륜차 전용 도로 확충, 위험 도로 구조 개선, 불법 주정차 단속 강화 등 인프라 개선이 요구됩니다.
    • 사회적 인식 개선: 배달 노동자를 존중하고, '빨리빨리' 문화보다는 안전을 우선하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중요합니다.

 

8. 결론 및 시사점: '사람 중심' 산재 인정의 중요성

이번 판결은 산재 인정 여부를 판단할 때, 단순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근로자의 행위(신호위반 등)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발생하게 된 배경, 즉 업무의 특성, 작업 환경, 근로 조건(업무량, 시간 압박, 피로도 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중요한 원칙을 재확인했습니다.

  • '업무상 재해' 인정 범위의 현실화: 특히 배달업과 같이 위험성이 높고 시간 압박이 심한 업무의 경우, 근로자의 사소한 부주의나 법규 위반이 있더라도 그것이 업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면 산재로 폭넓게 인정될 가능성을 열어두었습니다. 이는 산재보험 제도의 취지(근로자 보호)에 부합하는 해석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 '범죄행위' 제외 규정의 엄격 해석: 산재보험법상 보상 제외 사유인 '범죄행위'는 고의성이 명백하거나 사회 통념상 용인되기 어려운 중대한 위법 행위로 제한적으로 해석되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단순 과실이나 업무상 스트레스 상황에서 발생한 법규 위반까지 '범죄행위'로 보아 보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여줍니다.
  • 플랫폼 노동자의 안전 문제 환기: 이 판결은 위험한 노동 환경에 노출된 플랫폼 기반 배달 노동자들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개인의 과실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플랫폼 기업의 책임 있는 역할과 정부의 제도적 개선 노력이 시급함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행정청 처분에 대한 사법적 통제: 근로복지공단의 형식적인 법규 적용이나 재량권 행사에 대해 법원이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법의 취지를 고려하여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행정의 적법성 확보와 국민의 권리 구제에 기여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판결은 비록 근로자에게 일부 과실이 있더라도, 그 과실이 업무 수행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해당하고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면,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는 향후 유사한 산재 사건 처리 및 관련 정책 수립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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